줄거리
만백성이 오색 등불 아래 모여 흥취에 취해 있던 도성의 어느 깊은 밤. 화려한 불빛과 왁자지껄한 소란 속에서 감히 믿기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직접 살피고자 은밀히 잠행을 나섰던 조선의 국왕이, 단 한 번의 비명조차 남기지 않은 채 마치 연기처럼 조용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상인들의 억센 호객 소리와 광대들의 풍악 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운 야시장. 그 인파의 틈바구니에서 왕의 그림자처럼 붙어있던 호위무사 행일의 핏발 선 당혹감은 축제의 거대한 소음에 무참히 묻혀버린다. 바닥에 떨어진 단서 하나, 목격자 하나 없는 완벽한 실종. 섣불리 관군을 풀거나 전하의 실종 사실을 알렸다가는, 어둠 속에서 옥체를 노리는 외부의 적들에게 사냥감을 내어주는 꼴이 될 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호위무사는 철저한 비밀 유지를 결심한다. 그는 외부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후미진 은신처로, 자신이 목숨을 걸고 신용할 수 있는 단 세 명의 인물을 은밀히 불러들인다. 왕초, 주모, 전기수. 이들에게 주어진 무기는 오직 야시장에 떠도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말뿐이다. 시각적인 증거 하나 없는 척박한 상황 속에서, 얽히고 설킨 증언들의 모순을 파헤쳐 왕을 찾아내야만 하는 치열한 두뇌 싸움이 시작된다.
캐릭터
왕초 정필
육조거리에서 그의 허락 없이 일어나는 소란은 없다. 6척에 달하는 웅대한 기골로 도성 내의 온갖 궂은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던 무법자. 하지만 짐승 같던 그도 무사의 칼끝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했다. 행일에게 완벽히 제압당한 그 날 이후, 왕초는 기꺼이 무사의 든든한 수족이 되었다. 겉보기엔 무식하고 주먹이 앞서는 사내지만, 누구보다 도성의 지리에 밝고 바닥의 생리를 잘 안다. 왕이 사라진 지금, 그는 도성 구석구석에 깔린 자신의 수하들을 이용해 말이라는 이름의 흩어진 단서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주모 수겸
사람 좋은 웃음으로 국밥을 토렴해 내지만, 그녀의 귀는 도성 전체를 향해 열려있다. 육조거리 주모들의 왕언니로 통하며, 궐내 나인들부터 저잣거리 왈패들의 사연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인물. 무사 행일은 물리적인 무력보다 무서운 것이 소문의 힘임을 알았기에, 도성의 모든 소문이 모이고 흩어지는 연결점인 그녀를 은신처로 불러들였다. 모든흔적이 지워진 현장에서, 그녀는 흩어진 사람들의 대화와 뜬소문 속에서 범인의 발자국을 찾아낸다.
무사 행일
왕이 유일하게 등을 맡기는 사내. 주군이 단둘이서 야시장의 소란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행일의 압도적인 무력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하제일검의 칼날도 흔적 없는 증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단 하나의 물증도, 핏방울 하나도 남지 않은 기이한 사태. 평생 칼로 말해온 그가, 주군을 되찾겠다는 미치도록 맹렬한 충심 하나로 칼 대신 정보와 추리의 판을 깐다. 관군의 눈을 피해, 도성의 밑바닥을 가장 잘 아는 세 명의 조력자를 은밀히 불러들인 그는 이제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적의 목을 조이기 시작한다.
전기수 담항
*읽어야 하는 지문이 많습니다* 팔도를 떠돌며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노래로 팔던 사내. 육조거리 야시장의 화려한 불빛을 좇아 한양에 발을 들였건만, 그가 마주한 것은 자신의 상상력조차 뛰어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시각적 증거가 완벽히 증발해버린 기이한 판. 무사 행일은 물리적 단서가 없다면 범인이 남긴 '말의 빈틈'을 찾아야 함을 깨닫고, 인간의 심리와 서사의 흐름을 가장 잘 아는 담항을 은신처로 불러들인다. 사람들의 엇갈린 진술, 앞뒤가 맞지 않는 뜬소문들. 담항은 그 어지러운 대화의 조각들을 날카롭게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여, 어둠 속에 숨은 범인의 실체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제작자 코멘트
안녕하세요.